[책리뷰] 동물보호의 시발점, 감동적인 동물역사 속으로 <잘있어, 생선은 고마웠어 :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야생방사 프로젝트>
“인간을 바라보는 동물들의 낙망한 눈빛이 동물원 자신의 존재 기반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제돌이와 돌고래들은 은폐된 가해를 드러냈고 사람들의 죄의식을 자극해 역사를 바꾸었다.”_책 일부 중
역사를 바꾸었다.
이 책은 지구환경과 인간-동물 관계에 관심이 많은 한 기자가 불법 돌고래를 취재를 하다가 쇼돌고래의 현실을 맞이하고 결국은 불법으로 포획된 돌고래들을 방류하는 스토리를 담고 있는 책이다. 이 스토리 안에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또 사람들과의 갈등, 정치 그리고 세상에 던지는 크나큰 도전과 변화가 들어있다.
책의 저자가 이 책으로 바라는 것은 딱 한 가지다. 돌고래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 많은 생각과 감정이 오고 갈 것이며 과거의 우리나라가 동물들을 어떻게 대했는지도 짐작을 할 수 있는 역사들이 담겨져 있어 오늘날과 비교해 보면 이렇게나 발전하였으며 또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책을 읽으면서, 과거의 일을 읽고 있는 것이 마치 일본과 격은 아픈 역사를 보는 듯했다. 환경부와 농림축산부의 무지도 이해는 하지만 그 충격이 작지는 않았다.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 덕분에 우리나라가 얼마나 발전했으며 또 발전하고 있는 모습을 비교하여 볼 수 있어 좋았고 그 가능성 또한 어둡지만은 않았다. 책을 읽을 때 기분이 상할 때도 있었지만 긍정적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책 속에 돌고래에 대한 정보와 저자의 철학 등 많은 흥미 요소들이 첨가되어 있어 지루하지 않게, 다른 방면으로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리고 동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선과 생각을 많이 표현하고 스스로 질문하며 고민하는 모습에서 동질감이 느껴졌다.
생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비윤리적 관광에 대한 불매운동”_책 일부 중
돌고래만 불쌍했을까? 라는 생각이 가장 확실하게 튀어나오는 부분이었다. 다른 동물들을 보기 위해 표를 사는 것은 윤리에 맞는 것인가? 돌고래 붐, 나비 효과로 인해 한 종의 경각심을 가지고 마음이 하나로 모여 움직이는 현상은 굉장히 긍정적이다를 넘어 감격스러울 정도였다. 더 이상을 바란다면 누군가 욕심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저 모든 생명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 봐준다면 나비효과가 더 느릴지라도 조금은 더 큰 폭풍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책의 사건들로도 정말 큰 변화를 주었고 이로 인해 동물에 대한 우리들의 시선이 성장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만족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심인 듯하다.
그리고 책의 저자가 다른 독자들이 ‘돌고래만 불쌍했을까?’에 대한 대답도 어느 정도 해놓았다. 자기인지 동물 즉, 자신을 인지하는 동물들은 스트레스가 더 심하고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멸종위기 단계 중 최고 단계라고 말한다. 또 불법으로 취득한 ‘장물’이었다고 한다. 필자는 여기에 대한 대답을 하고 싶다. ‘그래서요?’ 물론 저자에게 악감정은 없다. 저자의 상황도 충분히 이해하며 필자도 저자의 노력에 진심으로 감동하였고 저자뿐만이 아니라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위해 시간과 마음을 써준 모두에게 감격을 받았다. 그 자리에 필자가 없었다는 게 억울할 정도였다. 다만 필자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아무리 위험하고 중요하다는 옵션을 추가한다 해도 생명에게 순서를 메긴다는 것에 의구심과 불쾌감이 들었는 것이다. 그것도 인간이 메긴다는 것에. 다른 동물들도 분명 위험하고 스트레스도 심할 수 있다. 또 불법인지 합법인지 제대로 구별은 하고 있는가? 저자도 돌고래만 신경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른 동물들도 보면서 아마 여러 감정이 오갔을 것이다. 그저 더욱 발전했으면 한다는 마음에 개인적이 생각을 글로 적어 보았다.
위 질문에 저자가 정면으로 대답한 부분이 있다.
“돌고래는 인간이 가진 ‘인식론적 한계’ 안에서 특별하다. 유인원, 코끼리 등과 함께 고래는 거울을 통해 자아를 인식하는 몇 안 되는 동물이다. 문화를 전승하고 교류한다. 인간과 견줄 만한 고등생물체다. 동물원에 가두면 그만큼 크게 불행을 느낄 것이다. 과학이 고래에 대해서 아는 건 많지 않다. 하지만 과학이 알려주는 한에서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_책 일부 중
저자도 모든 생명은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위의 질문에 싫증이 나서 아마 열 분 띠게 글을 적어 글 속의 감정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위 바로 다음 내용이다.
“우리의 인식의 폭이 넓어진다면, 사자와 호랑이도 고래만큼 특별해질지 모른다. 야생방사 성공으로 시끄럽던 논쟁은 정리되어갔다. 동물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한층 성숙되었다.”_책 일부 중
하지만 불쾌한 부분은 불쾌하다. 위 내용들을 그래도 순서를 바꿔 적었다면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이해도가 높아졌을 것이다. 그저 책을 읽는 독자로써 돌고래가 특별하여 차별하는 감정이 앞선다.
자아 인식을 한다고, 문화를 교류한다고, 고등생물체라고, 과학이 고래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다른 동물들이 자아 인식을 하는지 안 하는지 겨우 거울만으로 판별이 가능한가? 그들의 눈으로 뇌로 한번 살아본다면 과연 스스로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까?
문화를 교류는 모든 동물이 하고 있다. 그들의 말고 행동 그 이상을 혹시 알아들을 수 있는가? 아마 알아듣는다 해도 그것은 인간의 지극한 상상에 불과하다. 직접 그들이 되지 않는 이상. 그리고 문화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그들만의 문화도 문화일 것이다.
고등생물체라, 고등의 기준도 너무나 광범히 하다. 누구 수준에서 어느 정도가 고등이고 저등인지. 그러면 저등한 생물은 괜찮다는 것인가. 각 곤충들의 사냥 기술을 보면 ‘와 대단하다, 똑똑한데?’라고 하면서 왜 이들은 저등 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과학이 고래에 대해서 잘 모른다면 다른 동물들은 잘 아는가? 그들이 소통방식과 문화, 모두 아는가? 과학은 모두 모를 것이다.
물론 윗글들과 책은 모두 불과 약 4년 전에 나온 이야기다. 지금과는 많이 다르며 우리들도 그리고 과학도 성장해 왔다.
“왜 돌고래만 특별해요?”라는 질문을 다시 듣는다면 그저 이렇게 말해 줬으면 했다.
“난 돌고래를 사랑하니깐. 나에게 돌고래는 특별하니깐. 내가 돌고래에게 이렇게 노력하는 만큼 누군가도 꼭 다른 동물들에게 노력해 주길 바라니깐.”
이 글에 대한 생각을 적는 필자도 동물에 대한 생각이 예전보다 조금은 더 깊어졌으며 그들을 위한 마음이 더 간절해졌다는 글로 봐주면 감사하겠다.
책에서 돌고래들이 조련을 실수하거나 잘하지 못하면 먹이를 주지 않는다. 이것은 모든 동물은 조련할 때 사용하는 긍정적 훈련 방법 중 하나이다. 동물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이다.
필자는 매년 3월에 영화 <항거>를 챙겨 본다. 영화 속에서 일본은 만세를 부르다 일본 감옥에 갇힌 수용자들이 반항을 하거나 관리자에게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면 밥을 줄이 거나 주지 않는다. 아마 피곤하게 때리는 것보다 확실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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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뭘까.
굳이 비교 대상을 저것으로 했어야 했나? 사람을 때리든 동물을 때리든 때리지 않는 것이 더 나은 거 아닌가?
야생에 잘 있다가 잡혀 온 동물들과 우리의 땅을 지키기 위해 만세를 부르신 우리 조상님들과 같음을 느꼈고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행동하길 바라는 쇼 조련사와 일본 관리인들과 같음을 느꼈다.
돌고래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복지, 윤리 그리고 저자의 철학 등 많은 내용을 내포하고 있고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느껴진다. 동물의 정치와 노동을 말해주는 부분은 정말 신박하고 좋았다.
책 속의 갈등도 흥미롭다. 모두 같은 마음으로 돌고래들의 방류를 도와주지만 그 속에서도 갈등이 있다. 아마 생각 차이이고 누가 옳다고 말은 못 하겠지만 따뜻하면서도 날카롭다.
그리고 동물관련법, 수족관 법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아마 이보다 더 자세하게 알 수는 없을 것이다.
책에서 정부나 서울시에서 돈을 대주지 않는 상황이 나온다. 이해한다. 서울시 입장이나 정부 등, 어떻게 나라의 돈을 함부로 쓸 수 있겠는가. 하지만 100번 이해해도 갑갑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동물을 보고 만지려는 욕망이 있다. 그 욕망을 가장 싼값에 언제든지 실현할 수 있는 곳이 동물원이다.”_책의 일부 중
씁쓸했다. 아직도 그런 현실이 있기에 더 아팠다. 필자가 원하고 바라던 동물원은 이런 곳이 아니었다. 어릴 때 그저 동물들이 좋아 동물원 사육사를 꿈꿨지만 현실을 직관하고 혼란에 빠졌었다. 하지만 필자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아직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넘쳐난다.
필자는 위아래와 같은 동물원을 바라지 않는다. 만약 철장이 필요하다면 그 이유는 더 명확하고 윤리적이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필자가 원하는 동물원을 직접 만들 것이다.
“동물원의 풍경 속에 함께 있으면서도 철창에 갇혀 있지 않은 동물, 그것은 바로 인간이었다.”-잔 카제즈, <동물에 대한 예의> 중에서 _책의 일부 중
“.. .. 인간중심적인 해석이었다. 기사가 환상동화가 아닌데도 신문에서는 이런 기사가 한동안 이어졌다. 동물원의 ‘동물 감금’이 한 번도 문제라고 생각지 않던 우리에게 급작스러운 제돌이 야생방사 발표로 생긴 긴장을 해소하기 우해서는 한편으로 이런 동화가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_책의 일부 중
“야생동물은 ‘보전하기 위해 지배한다.’”_책의 일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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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피식하며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도 있다.
“(앞 내용에서 돌고래 등지느러미에 숫자를 적냐 마냐에 대한 갈등이 있었음).. .. 제돌이는 지금도 1번 표식을 새기고 바다를 누비고 있다. 문명의 얼룩이다. 그렇지만 그 얼룩은 남방큰돌고래 보전의 플래카드이기도 하다. 지금도 무엇이 옳았는지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제인 구달은 아프리카 곰베 국립공원의 침팬지 사회에 들어가 연구하면서 침팬지에게 먹이를 줘 길들이고 아픈 침팬지를 돌봤다. 과학자 사회에서는 논란이 분분했다. 연구자는 야생에서 일체의 간섭을 하지 않는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천둥벌거숭이 같은 초보 여성과학자가 깨뜨렸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제인 구달의 영장류 연구 방법은 학계에 주류가 되었다. .. .. 그러나 동결표식(등지느러미에 숫자를 적는 것) 논란은 야생에 대한 인간의 개입이 어디까지여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다.”_책의 일부 중
“과학 너머에 과학이 있다고 생각해요”_책의 일부 중
뭔가 묘하게 듣기 좋았다. 작게나마 위로도 있는 듯했다.
필자도, 사람들도 동물에 대한 생각들이 더 깊어지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아직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더 노력해야 하고 또 노력해야 한다. 다만 절대 서둘러서는 안 된다.
필자의 이상은 한결같다. 생명들의 자유의 몸짓을 보기 위해 행동할 것이다. 이 것이 필자의 삶의 이유이자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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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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